아쉬탕가 요가란

아쉬탕가 요가는 체계적인 6개의 시리즈와 독특한 빈야사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수련 방법이다.

아쉬탕가 요가는 고전적 요가체계이다.
이 체계는 성인 바마나 리쉬에 의해 고대 문헌 '요가 코룬타'로서 전해졌다. 요가 코룬타는 다른 많은 그룹의 아사나 뿐만 아니라 빈야사, 드리스티, 반다, 무드라, 철학 등에 대한 수준 높은 근원의 가르침들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요가 코룬타는 1900년대 초반 구루 스리 라마 모한 브라마차리에 의해 스리 T. 크리슈나마챠리야에게로 전해졌고, 이후 크리슈나마챠리야에 의해 그와 많은 시간들을 함께하며 가르침을 받던 학생 스리 K. 파타비조이스에게로 전해졌다.

1915년 7월 보름날, 남인도의 카르나타카 주(州) 하산 지방에 있는 코우쉬카라는 작은 마을에서 스리 K. 파타비조이스가 태어났다. 파타비조이스는 1927년 11월(힌두력 10월), 친구의 권유에 따라 중학교 50주년 기념강당에서 열린 요가강의 및 시연회에서 처음으로 요기 크리슈나마챠리야를 만났다. 그때 본 시연회를 계기로 요가에 매료되었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곧장 그를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이후 2년간 날마다 요가수련에 매진한 파타비조이스는 1930년, 성년식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립 산스크리트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하여 코우쉬카를 떠나 마이소르로 향했다.

1931년 그는 스승 크리슈나마차리야와 마이소르에서 재회하였고, 스승 크리슈나마차리야가 마이소르에 머물렀던 20년간 그의 옆에서 배움에 힘쓰고 또 도우며 지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크리슈나마차리야의 후원자였던 마이소르 왕 마하라자를 통해 가르침의 기회를 얻었고, 요가를 가르치기 위해 환자 한명을 고치라는 스승의 시험을 통과한 뒤에야 요가를 가르쳐도 좋다는 '축복'과 함께 1937년 3월 1일부터 산스크리트 대학에서 요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948년, 파타비조이스는 크리슈나마챠리야와 고대 경전으로부터 배운 요가의 치료적인 특성을 실험하기 위해 마이소르의 락쉬미뿌람에 있던 자신의 집에 아쉬탕가 요가 연구소(Ashtanga Yoga Research Institute)를 세웠고, 1964년 무렵 그를 찾아온 앙드레 반 리스베스라는 벨기에인을 통해 그의 저서 '프라나야마(Pranayama)'가 유럽에 소개됨으로써 서서히 서양인들이 요가를 배우기위해 파타비조이스를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1974년, 파타비조이스는 남미에서 열린 요가 학회에 초대받아 처음으로 서양을 방문하여 요가를 강연하였고 이후 종종 미국을 방문하며 당신의 가르침을 전파하는데 힘썼다.

2009년, 93세를 마지막으로 5월 18일 마이솔 자택에서 Sri K. 파타비조이스는 운명하였으며 그의 외손자인 R. Sharath Jois에게로 전통은 계승되었다.

티쳐 샤랏은 이후 구루의 가르침을 받들어 수련과 가르침에 힘썼고, 또 각 나라를 고루 방문하며 아쉬탕가 요가를 전파하였다. 그 결과, 현재 수천명 이상의 아쉬탕가 수련자들이 매년 인도를 방문하며, 또 각자의 나라에서 아쉬탕가 요가 리니지를 공부하고 수련하며 전파하고 있다.